속리산은 예로부터 속세를 떠난 성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 깊은 품안에 자리한 법주사는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1,500년 세월을 이어온 불교의 성지이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산사입니다.
속리산은 통일신라시대에 승려인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이곳에 당도하자,
발을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고 이를 본 농부들이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하였다는데에서 속리 지명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신라때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 불렸다.
속리산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
이라 불리기도 하였다.(출처: 한국민족대백과 사전)
법주사 가는 길

오래도록 찾고 싶던 곳,
이제야 그 소원을 풀었습니다.
8월 중순 오후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법주사로 향했습니다.
저 멀리 문장대는
구름과 안개에 몸을 감춘 채
은근한 자태로 손짓합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첫 발걸음
어느새 사십 오년이란 세월이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겹겹이 쌓인 시간만큼
감회는 더욱 깊고 새로웠습니다.
사찰로 내딛는 걸음마다,
묻혀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깨어나
내 마음에 고요히 스며듭니다.
소나무 군락과 눈맞춤

속리산면 초입에서 정이품송을
먼저 마주했지만,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전해드리려 합니다.
법주사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소나무들이 “어서 오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껍질에는 연륜이 스며 있고,
푸른 잎사귀에는 여전히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휘어지고 굽어져
자유롭게 춤추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고요하고 강인함이
깃들어 있는 듯 했습니다.
사실 정이품송이 마음에 꽉 박혀 있던
터라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해 약간은 죄송했습니다.
소나무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직함을 품어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 안내판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5,623,475평)를 말한다.
속리산은 천왕봉을 비롯한
9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수려한 경치로 인해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건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팔상전(국보 제55호),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등
국보3점, 보물13점, 천연기념물1점, 도지정문화재 24점이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 받았습니다.
법주사를 포함해 복천암, 탈골암 등 10개의 전통
사찰이 속리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안내판 설명 요약)
속리산 법주사 일원 종합 안내판

속리산 법주사
일대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웅보전, 팔상전, 쌍사자석등 등 법주사의 주요 건물과
문화재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방문객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가람배치도

출처: 네이버 캡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안내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의 사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 나열되어 있으며,
각 사찰의 사진과 위치를 지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대찰들은 한국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서,
산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주사 불교 문화 유산 안내소

전통 한옥 양식으로 건축한 안내소는
속리산 풍경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스며듭니다.
창가에는 “무료입장”이라는
문구가 정겹게 붙어 있었습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1년간 이어져 오던
관람료 제도가 폐지되면서,
2023년 5월 4일부터 법주사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그 품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무료라는 말보다 더 큰 선물은,
아마도 언제나 마음을 활짝 열고 맞이해주는
법주사의 너른 품이 아닐까요.
세조대왕이 걸었던 치유의 길, 오늘은 여행자의 산책길

“모두 물렀거라! 임금님의 행차이시다!”
장중한 나팔수의 호령이 숲길에 메아리칩니다.
조선 제7대 임금, 세조가 지나갔다는 바로 그 길로 들어갑니다.
세조는 지병으로 고통받던 몸을 치유하기 위해
속리산 약수터에서 몸을 씻었고, 병이 나았다고 전해집니다.
나무 그늘 드리운 숲길을 걸으며
임금이 느꼈을 치유의 기운을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곡의 물소리가 은은히 흐르고,
숲의 바람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새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다독여지고,
일상에 지친 나그네의 번민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불법이 머무는 절, 법주사의 품에 안기다

‘호서 제일 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일주문 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직역하면 “호서 지역(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가장 뛰어난 사찰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가람(伽藍)’은 본래 산스크리트어
사라스바티(sarvāstivāda)에서 유래한 말로,
불교 사찰의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이 일주문은 1500년의 사찰 향기를 품은 첫 번째 문으로,
‘한마음’을 상징하며 세속과
불법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합니다.
폭염 속, 방문객들이 우산을 쓰고 걷는 모습이
이채롭게 다가옵니다.
자연관찰로

아름다운 분이 숲의 향기에 푹 빠진듯 합니다.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세심정까지 이어지는 2.4km 숲길입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고요한 숨결이 나를 감쌉니다.
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무장애 탐방로입니다.
느긋하게 걸으며,
나무와 바람, 돌 하나에도 이야기를 듣듯 귀를 기울였습니다.
걷다 보니 문득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멈추고 나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가, 세상이 바쁜 것인가?”
숲길 한가운데서 이 구절을 곱씹으니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산길에 마음속에서 절반쯤은 답을 얻은 듯했습니다.
그 깨달음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기쁨과 고요한 만족이
내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금동미륵대불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을 바라봅니다.
압도적인 높이에 숨이 막히듯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전체 높이 33미터(기단부 8미터 포함),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금동불이자 하늘 가까이에 선 불상입니다.
햇살을 머금은 황금빛 미륵은
멀리서 보면 위용으로 압도하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끝과 눈매에 깃든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웅장한 몸체 속에서도 사람을 품는 자비가 묻어나,
순간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특히 펼쳐진 손바닥을 올려다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상상이 피어납니다.
‘저 손바닥 위에 내가 한번 안겨 본다면 어떨까?’
세속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이처럼 기대어 쉰다면,
그 순간 만큼은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이 불상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긴 세월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776년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처음 장육불을 조성했고,
천 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왔으나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당백전 재료로 훼손되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시멘트로 복원되었으나,
1990년대 청동 160톤을 들여 다시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며
2000년 개금불사(改金佛事)가 시작되어
2002년 마침내 황금빛 자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순금 80kg, 두께 3미크론(0.003mm)의 금박이 입혀진 이 불상은
인간의 정성과 신심이 깃든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현재는 공사로 기단부가 가려져 있어,
보은군청에서 제공한 사진을 통해 그 전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리수나무, 금동미륵, 사찰 지붕이 빚어낸 영적 조화

작가는 아니지만 구도를 맞춰 찍었더니
왠지 작품 같은 느낌이 납니다.
열매를 맺은 보리수나무는
불교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나무입니다.
뒤에 지붕위로 우뚝 솟은 금동미륵대불은
모든 인간들에게 자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존재를 감싸는 듯한
사찰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은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는 조화를 보여줍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각각 독립적이지만,
함께 어우러져 깊은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보리수나무는 깨달음의 시작을,
금동미륵이 깨달음의 완성을,
그리고 지붕의 곡선이 그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붕의 곡선은 하늘과 맞닿아 부처님의
가르침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는 곧, 속세의 삶 속에서 깨달음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의 섭리 속에서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사찰은 건축물, 자연, 그리고 불상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깊은 깨달음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산사를 지키는 수호신 사천왕문

사천왕문에 들어서는 순간,
네 분의 장엄한 천왕상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사천왕들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며 서 있습니다.
그 위엄에 차마 똑바로 눈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고 가라” 며
강하게 경책(警責,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하는 기운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경건해졌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나조차
자연스레 ‘예’ 하며 합장을 올리자,
사천왕들이 출입을 허락하는 듯한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문 앞의 공기조차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숭엄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천왕문 앞 나무와 연꽃의 의미

사천왕문을 중심으로 도열한 연꽃과
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마치 사바세계의 질서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천왕문을 지켜온 것처럼 웅장하고 굳건한
인상을 주는 나무는 속세의 번뇌를 털어내고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특성으로 인해,
번뇌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천년을 지켜온 깃대, 하늘을 향한 기도의 흔적이 두 기둥 사이로 스며듭니다.

원래 당간지주는 삼문(三門) 형식이 정착되기 전 사찰의 존재를 표시하는
가장 바깥쪽의 간판과 같은 역할을 하던
유구(遺構, 옛날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이다.
당간이란 위쪽에 도르래 장치를 해서 당을 부착하도록 제작된 기둥이다.
여기서 당이란 깃발과 같은 펄럭이는 장엄물, 또는 천으로 제작하여 길게 늘어트리는
표찰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국기봉과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가 흔히 좌우당간(左右幢竿, 좌우지간, 하여튼, 여하튼 등의 뜻을 가진 말)
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말은 당간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찰의 상징세계 上, 자현스님)
당간지주는 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 · 우에 세우는 기둥을 말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할은 절에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幢)이라는 긴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붙들어 고정, 지탱하는
기둥 2개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나무위키)
이 기둥의 역할은 단순히 깃발을 거는 것을 넘어,
사찰의 위치를 멀리서도 알리고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구조물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출처: 나무위키 이미지 캡쳐
관련하여 사찰 대웅전 앞에서 당간지주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괘불(掛佛)을 거는
용도의 괘불지주(掛佛支柱)라고 합니다.
둘의 차이점은 당간지주는 절 바깥에 1쌍만 있지만, 괘불지주는 법당 앞에 2쌍을 세운다는 차이가 있으며,
당간지주는 대체적으로 사람보다 큰 반면, 괘불지주는 사람보다 작은 편이다.(나무위키)
그러고 보니 선암사 대웅전 앞에 자리한 돌 2쌍이 괘불지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역사와 시간이 깃든 위엄,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捌相圖)를 모신 5층 목조탑으로,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겹겹이 쌓인 지붕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5층 목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 장엄한 자태와 위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팔상전의 웅장함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연꽃 향기가
마음 깊숙이 평온을 내려줍니다.
오랜 역사를 지켜온 팔상전과
미래를 상징하는 금동미륵대불이
전통과 현대, 과거와 미래를 한 공간에 담아냅니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대비되는 지붕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시간의 흐름과 불교의 의미를 말해줍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여유와 감동을 음미해 보십시오.^^
번뇌 속에서 피어난 순수의 경지

고요한 마당에 한 떨기 연꽃이 세상을 비추는 듯 찬란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 꽃잎 위에는 빗물이 보석처럼 영롱하게 맺혀 탐욕에
물들지 않는 순결한 존재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송이 꽃이 주는 깊은 울림은, 찰나의 순간에도
우리에게 삶의 경이로움과 숭고한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법주사의 정신 대웅보전

사찰의 중심건물 대웅보전입니다.
대웅보전은 법주사의 중심 건물로서, 그 자체로 법주사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단청과 웅장한 지붕선이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대웅보전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건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통해 내면의 안식을 얻고자 합니다.
번뇌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불상 앞에 내려놓고,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것 같습니다.
번뇌의 그늘 아래, 깨달음을 묻다

햇볕이 쏟아지는 법주사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불교의 오랜 역사를 상징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부처님은 이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더위에 지친 불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흥미롭게도,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보리수 나무가 부처님의 깨달음 장소였다는 전설 때문에,
그 열매로 만든 염주는 수행자가 깨달음을 향한 길을 상기하게 합니다.
염주는 마음을 집중하고, 번뇌를 제어하며,
정진과 명상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를 손에 쥐는 순간,
불자들은 부처님과 연결된 상징적 힘을 느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행에 몰입하게 됩니다.
진영각과 괘불지주

진영각은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 등 30인의 고승
초상화(영정)를 모신 공간으로, 조사각이라고도 합니다.
정면7칸, 측간3칸, 맞배지붕 건물로
불상이나 탱화 대신 조사들의 초상이 모셔져 있어,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건물 앞에 보이는 돌기둥은 괘불지주(掛佛支柱)로,
야외에서 괘불을 걸 때 사용하던 것입니다.
진영각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을 이어온 선대 조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불자들은 이곳에서 조사들의 삶을 되새기며
그들의 깨달음을 본받고자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현판 아래 8개의 기둥에 새겨진
부처님의 말씀으로 보이는 주련이 눈길을 끕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 명부전

명부전은 사찰에서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부(冥府), 즉 저승에서 심판을 담당하는
지장보살과 시왕(十王)을 모시는 곳입니다.
경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려한 단청과 함께 가지런히 걸려 있는 연등이 인상적입니다.
연등은 곧 죽은 이들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빛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명부전은 삶의 끝과 죽음의 시작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위로 받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죽음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이곳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연등의 빛은 마치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범종각

불교의 사물四物)신앙과 사찰의 전통 건축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으로
법주사 대표적인 전각중 하나입니다.
범종각 앞에서 마치 거대한 시간의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굽이진 처마와 단청의 무늬를 따라 시선을 올리다 보면, 마음속 번잡한 생각이 하나둘 가라앉습니다.
종을 울리면 산과 하늘, 그리고 마음까지 울릴 것만 같은 울림이 가슴 깊숙이 다가와,
그 앞에 선 순간 만큼은 내마음도 고요한 파동 속 일부가 된 듯합니다.

화려한 연등이 바람에 살짝 흔들릴 때마다,
불자는 세속의 소망과 번뇌가 함께
흔들리며 씻겨 내려가는 듯한 평온을 맛봅니다.
범종각은 단순히 종을 두는 전각이 아니라,
불자에게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영적인 울림의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바위가 나무를 품은 걸까요?
아니면, 나무가 바위를 껴안은 걸까요?

넓고 넉넉한 땅을 두고도 하필 이 좁은 바위틈을 선택한 까닭은
아마도 나무와 바위만이 알고 있겠지요.
세상에 정해진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흩날리던 인생의 씨앗이 멈춰 선 그곳이
곧 내 삶의 터전이 되는 법입니다.
비록 바위틈일지라도,
그곳에 뿌리를 깊이 내린 순간
그 자리는 곧 나의 집이자 나의 길이 됩니다.
서로를 품고 기대며 살아가는 바위와 나무의 모습에서
상생(相生)의 지혜와, 묵묵한 삶의 강인함을 배웁니다.
원통보전의 아름다움

조금 멀리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보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있는 전각을 말합니다.
원통이란 말은 능엄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화두인데,
진리에 대해 원만하게 통달 하는 법으로 해석합니다.
능엄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원만하게 통달하는 법문을 얻었다'고
전하는데 시방에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이 자비를 행한다는 의미로
관세음보살을 원통교주라 부릅니다.
이 원통보전은 정면3칸, 측면3칸으로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건물안에는 금색 목조 관세음보살상(보물 1361호)이 모셔져 있습니다.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는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임금의 연 (輦. 가마) 이 지나가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송

법주사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정이품송앞에 섰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정권을 잡은
세조가 법주사를 찾았을 당시를 떠올리면,
서슬 퍼런 정국의 기운에 나무조차 숨죽이고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조선에서 돌 하나, 풀 한 포기조차 임금의 것이 아닌 것이 없던 세상,
나무가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이었겠지요.^^
하지만 영특한 나무라면 분명 그 시대의 공기를 스스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저의 작은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한켠에는 여전히 씁쓸함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정이품송은 세월의 무게와 태풍의 상처로 가지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고,
부디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정이품이라는 품계는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고위관료입니다.
나는 오래도록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태풍에 꺾인 상처까지도
모두 품은 그 모습을 보며, 나무도 사람도, 권력도
결국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끝으로, 사진 자료 유실로 모든 문화재를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법주사에서 느낀 고요함과 깊은 울림이
독자 여러분께도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끝-
